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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 금융위기의 전조?

by Hanya Kennen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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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 개요

실리콘밸리은행(이하 "SVB")이 파산했다. SVB는 미국 대형 은행 중 자산 규모가 16위[각주:1]에 달하는 대형은행이다. 파산한 미국 은행 중에서는 역대 2번째로 큰 자산 규모이다.[각주:2] 

 

SVB는 1983년 설립된 이래, 벤처대출(venture debt)이라는 섹터를 창출하고 발전시켜온 벤처캐피탈 시장의 거목이다. 최근까지 3만개 이상의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수행하였다. 미국 전체 IT 및 바이오 섹터 벤처기업 중 55%가 SVB의 고객으로 알려져 있다.[각주:3]

 

'23.03.08일 SVB는 보유한 채권을 손절매하고 22억5천만달러 규모의 신주 발행을 발표했다. 이에 SVB의 건전성을 비관한 주요 벤처캐피탈 회사들[각주:4]고객들에게 SVB에 예치한 예금을 인출하는 것을 권고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바로 다음 날인 '23.03.09일에 SVB에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뱅크런(bankrun)이 발생한다. 하루만에 420억 달러 규모의 예금이 빠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23.03.10일 주 당국은 SVB의 영업을 중단시키고 그 자산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넘긴다. IT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풍을 이겨가며 40년간 명맥을 쌓아왔던 벤처 대출의 화신은 단 이틀만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2. 파산 원인 분석

2.1. 벤처 대출이란?

SVB는 설립 이후부터 벤처 대출을 주력으로 해왔다고 하였다. 벤처대출이란 초기 벤처기업에게 지분투자가 아니라 대출의 형태로 자금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실험적인 스타트업 단계를 지나 비즈니스 모델이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들어선 성숙기의 벤처기업들이 벤처대출의 대상이 된다. 벤처 창업가들은 경영권에 대한 위협 없이 사업 규모 확장(scale-up)을 위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벤처대출과 일반 대출의 차이를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 워런트(warrant): 일정 수의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증권

 

SVB는 실리콘밸리 내 벤처회사 및 벤처회사 임직원의 예금을 재원으로 유망 벤처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미국 벤처기업 생태계와 함께 성장해왔다. 벤처대출은 '10년말 이후 연평균 3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해왔으며, 글로벌 벤처 투자 규모의 20~30% 내외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각주:5] 이러한 성장성에 골드만삭스, 웰스파고은행 등 전통의 강호들도 SVB의 사업모델을 모방하여 벤처대출 사업에 진출할 정도였다.

 

2.2. 팬데믹 호황의 역설

2020년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의 대대적인 유동성 공급과 맞물려 비대면 경제의 최대 수혜자로서 테크 업계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미국 연준 대차대조표 규모는 2020년 이후 급격히 치솟았다.

'20.3월 미 연준(Fed)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제로금리 및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고 그간 진행했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는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규모의 유동성[각주:6]을 일거에 공급했다. 미 국채는 물론이고, 지방채, 회사채, 부동산담보대출유동화증권(MBS) 심지어 정크본드[각주:7]까지도 매입하는 "닥치고 내 돈 받아"를 시전한 것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 비트코인 등 모든 자산 가격이 상승[각주:8]하고 모두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이런 와중에 비대면 경제의 수혜주로서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한 테크 기업들은 눈부신 특수를 누렸고, 넘실대는 시중의 투자 자금은 빅테크부터 스타트업을 망라하는 테크 기업에게로 향한다.

벤처 기업들이 미친듯이 투자를 유치받고 계좌에 예금을 쌓아놓자 SVB에게는 현금이 쌓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신 규모는 이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SVB의 벤처 대출은 벤처기업들이 사업 규모를 확장한 뒤 후속 투자를 받기까지 버티게 해주는 브릿지론의 성격이 강한데, 돈을 대겠다는 쩐주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현금흐름도 좋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들이 비싼 이자를 내며 대출을 받을 유인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벤처기업들은 전통 산업과는 달리 공장이나 설비 같은 유형 자산에 대한 지출액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규모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금을 그냥 놀릴수도 없는 노릇이니 SVB는 주로 미국 국채 장기물을 사들이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린다

 

근데 문제는 이게 너무 과했다는 것이다. SVB는 보유자산 가운데 50.9%를 미국 국채 장기물 등에 투자한다. 미국 내 72개 주요 은행 중에 이러한 비중이 42%를 넘는 곳은 없다는 점에서는 이례적인 비율이다. 이로인한 비극은 '22년 인플레이션으로 촉발된 미국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에서 시작한다. 

'21년 상반기 미국의 소비자 물가지수(CPI)가 정책 목표인 2%를 넘어서 급격히 상승한다.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판단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서서히 완화조짐을 보이고 방역 규제를 해제하면서 살아난 소비 심리를 공급망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발생한 '병목 현상'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21.11월 CPI는 이러한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6%를 돌파했고 그 다음달인 '21.12월에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판단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22.02월 주요 에너지 생산국인 러시아와 주요 식량 생산국인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CPI는 멈출줄을 모르고 치솟는다. 결국 미 연준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 금리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했고, 시중에 뿌리는 돈의 양을 줄이는 테이퍼링(tapering)을 거쳐 뿌린 돈을 회수하는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을 단행한다. 이렇게 되자 경기 침체와 고물가가 겹치는 진퇴양난의 상황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대한 우려가 커지게 된다. 

금리 상승은 채권 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그리고 SVB는 채권을 좀 많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한다면 채무불이행이 있지 않은 이상 원금 손실에 따른 위험은 없다. SVB가 들고 있던 것은 미국 국채이니 더욱이 그렇다. 하지만 SVB에 예금을 넣은 주 고객들은 벤처기업이었다.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고 기준 금리 상승에 따라 요구수익률이 급격히 높아지는 상황에서 벤처 투자 규모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투자 유치가 난망해지자 벤처기업들은 예치해두었던 예금을 소진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SVB가 만기까지 장기채를 가져갈 수 있을리 없다. 단기 자금으로 급한 불을 끄기도 쉽지 않다.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보다 훨씬 높아진 상황에서 자금조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유한 장기채를 당장 팔고 모자라는 돈을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서 조달하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파산이었다.

현재 미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역대급을 기록하고 있다.

 

 

3. 파산 여파 분석

SVB의 예금 고객은 주로 벤처기업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의 예금 보장액은 1인당 25만달러이다. 보장 대상이 아닌 예금 규모가 1654억 달러로 집계된다.[각주:9] 일례로 스트리밍 플랫폼 로쿠(ROKU)는 현금 보유액의 26%인 4억 8,700만 달러가 SVB에 묶여 있다. 벤처기업들의 혼란과 위기는 가중될 것이다. 임금지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사 관리 자동화 벤처기업인 ‘리플링(Rippling)’은 SVB의 영업 중단이 결정된 '23.03.10일에 임금 지급건 중 일부를 완료하지 못했다. 소매업체 ‘캠프닷컴’은 사태가 터진 뒤 현금 확보를 위해 판매하는 제품들을 무려 40%나 할인에 부쳤다고 한다. 

  

예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직접적인 문제 외에도 성공적으로 평가받던 SVB의 벤처대출 사업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제기되며 안 그래도 위축된 벤처투자 자체가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SVB의 주요 역할이 벤처기업들에게 유동성을 공급하며 후속 투자까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벤처기업들은 든든한 방패막이 사라진 것이다. 미국 벤처기업들에게는 당장 입은 손해만큼이나 뼈아픈 일이다.

 

SVB의 파산이 2008년과 같이 금융위기로 전파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SVB 파산은 SVB만의 특수성이 많이 작용했다. 여·수신 고객 대부분이 벤처기업이었다는 점이 그렇고, 과도하게 미국 국채 장기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SVB가 그러했듯이 경기 민감성이 높은 산업과의 연관성(예컨대 부동산 개발 등)이 크며, 저금리 시기에 장기 채권 보유 비중을 크게 늘린 금융기관들에게는 남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SVB 파산 사태로 인해 미 연준의 3월 빅스텝(기준 금리 0.5%p 인상)에 제동이 걸릴 것이고 경기는 연착륙(soft landing)을 넘어서 무착륙(no landing)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SVB 파산은 거시 경제에게 있어서 일종의 가불기라고 생각한다. 미 연준은 유동성 회수가 불가피한 현 상황에서 금융 안정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뤄야 한다. 금융시장의 혼란이 조기에 해결된다면 물가 안정을 위해 '23.03.07 상원 의원 청문회에서 미 연준의장이 시사한 대로 3월 빅스텝 및 최종금리 상승으로의 여정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SVB 파산 사태로 인한 위기가 다른 중소 은행으로 전이되는 등 예기치 못한 균열이 발생한다면 미 연준은 유동성 공급 등 금융 안정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 조치가 실패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이고, 어찌저찌 성공한다고 해도 금리 인상과 금리 인하를 반복하다 1970년대 내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한 아서 번즈 의장의 전례를 답습할 우려가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 SVB 파산 사태는 경기 침체로 향하는 전조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 '22년말 기준 2,090억달러 [본문으로]
  2. 1위는 2008년 파산한 워싱턴뮤추얼 은행이다. [본문으로]
  3. '21년말 기준 [본문으로]
  4. 벤처캐피털피어, 파운더스펀드, 유니온스퀘어벤처 등 [본문으로]
  5. '21년말 기준 [본문으로]
  6. 본원통화량 [본문으로]
  7. 일정 신용등급 이하의 채권으로 '하이일드 채권'이라고도 불린다. [본문으로]
  8.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는 주식과 채권의 가격이 동조화하는 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다. [본문으로]
  9. '21년 말 기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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